|
2009 여름 추억 만들기 훌쩍 커버린 아들 녀석의 때늦은 사춘기 반항심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고 이제껏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두 남자(?)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 위해 “2009 여름 추억 만들기”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산을 좋아해 수시로 혼자 산행을 해오든 내가 몇 해 전 아들 녀석을 데리고 설악산 대청봉을 올랐을 때 다음 산행에 따라가면 꼭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큰소리 쳐 놓았던 바, 이번 산행은 앞뒤 생각하지 않고 떠 벌여놓고 보는 나의 행동 때문이라는 걸 알고 나니 새삼 쓴웃음이 나온다. 여행 일정이 잡히고부터 뉴스에서는 신종 인플루엔자 전국 확산 소식이 연일 들리고 마음이 심란해진 나는 혼자 속앓이로 끙끙대는 처지가 되었건만 이 사실을 모르는 마~님은 연속극에 정신이 팔려 짐을 꾸리는 남편의 묻는 말에 대꾸도 않는다. 이 모습이 나의 눈에는‘남자들끼리 잘해봐라’는 비아냥거림으로 비쳤든 건 내 속이 좁은 탓이었을까? 드디어 장도에 오르는 날! 새벽 일찍 인천공항 리무진에 오르니 지난 밤 뒤척이다 늦게 잠든 탓으로 이내 골아 떨어지고 한참 후 눈을 떠보니 어느새 공항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약속된 시간에 일행을 파악하니 의기투합한 전사가 스물하고도 네 분이란다. 인천공항에 처음 와본 현수는 궁금한 게 뭐가 그리 많은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데 공항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내가 그저 얼버무리자 ‘아빠 그것도 몰라’하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태도에서 ‘아빠노릇하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시간 정도를 날아 우리를 실은 비행기는 어느새 항저우 공항에 닿았다. 이제부터는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의 3박4일이 시작 되는구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교포3세 가이드의 말투가 함경도 어투라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한 핏줄이고 같은 우리말을 사용한다는 일체감이 정겹게 다가왔다.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의 여행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이어 날씨로 이야기는 옮아간다. 항주의 날씨는 서울의 날씨보다 기온이 더 높을 뿐만 아니라 습도 또한 너무 많아 습식 사우나에 들어간 느낌이라고 보면 된단다. 잠시 후 관광 첫 코스인 서호에 차가 닿자 역시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항주 소주가 있다는 중국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 항주가 중국의 넓고 넓은 땅 중에 살기 좋은 지역은 확실한가 보다.“항주에 와서 서호 유람을 하지 않고 용정차와 거지닭 동파육을 맛보지 못하고 송성가무쇼를 관람하지 않고 돌아감은 항주여행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가이드의 말이 무척 인상깊게 들렸다. 서호는 항주의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항주의 태수였든 소동파와 백낙천이 쌓은 소제와 백제라는 제방이 있고 둘레가 15킬로미터나 되는 큰 호수다. 항주가 자랑하는 명물 관광코스로 소동파는 중국의 사대미인 서시를 빗대 이 호수를 서자호(西子湖)라고 했다고 한다. 안개가 끼었을 때나,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호수내에는 세개의 섬이 떠있는데 호수의 크기와는 달리 수심이 제일 깊은 곳이 2미터도 채 안된다는 가이드 설명이 뒤따른다. 선상에 나가 몇 컷 촬영을 하고 돌아오니 선실 에어콘이 고맙게만 느껴진다. 물위라 시원하리라 예상했던 나의 당초 기대가 완전히 빗나갔다. 옆을 지나는 소형 선박에서는 뱃사공의 노를 젓는 빠른 손놀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잔 술을 앞에 두고 유유자적하는 중국인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져 왠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의 삼청산 등반을 위해 황산시로 가는 전세버스에 몸을 실으니 가이드의 내일 일정에 대한 설명이 잇따른다. 한참을 달리니 고속도로 휴게소가 보이고 잠시 볼일을 보려고 차에서 내리니 우리 일행밖에 보이지 않는다. 개통된 지 몇 해 되지 않았고 또 외국인들의 여행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도로라 아직 내국인의 통행은 별로 없단다. 새삼 중국인의 상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시간 가까이를 달리면서도 창가에 보이는 차량을 헤아리면 손에 꼽을 정도로 도로는 한산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해질녘의 농촌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어릴 적 고향 시골 마을로 달려가는 착각을 일으킨다. 황산시에 들어서니 중국의 여느 도시마냥 사람들로 붐빈다. 관광도시답게 곳곳에 조명으로 치장한 건물들이 보이고 운동을 하거나 저녁을 먹고 산책 나온 가족들로 가로가 북적이고 공원의 분수가 조명을 받아 형형색색의 물줄기를 뿜어낸다. 호텔에 도착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나니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에 누워 지나온 하루여정을 돌이켜 보다 깊은 잠에 빠졌다. 내일 삼청산 멋진 산행을 기대하면서.... 아침에 눈을 떠니 창밖에 부슬부슬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잠시 지나가는 비이려니 하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식당에 갈려고 나서니 비가 소나기로 바뀌어 오늘 산행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행을 위해선 조금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에 썩 집히는 게 없다. 몇 가지를 접시에 담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어제 점심때부터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던 일행이 먼저와 손짓을 한다. 인상 좋으신 교장선생님 부부, 체격이 우람한 곰치부부, 자매같이 다정한 친구 두 분 등. 곰치부부가 어제 저녁 식사에 선보인 곰치나물, 풋고추 절임, 오칭어 고추장볶이를 꺼내놓아 빵조각으로 허기만 면하려든 나는 금새 식욕이 되살아나 두 그릇을 비웠다. 육사를 나와 강원도에서 전방 근무를 하는 소대장 아들 녀석이 채집해 보내준 곰치나물을 이번 여행에서 맛보여 일행들로부터 곰치부부라는 별명을 얻은 곰치부인. 그녀가 가져온 밑반찬은 끼니때마다 기름에 들볶은 현지음식을 먹고 난 후의 입가심 박하사탕이었다. 친구와 말투가 똑같다며 고향이 어디냐고 묻길래 김천에서 자라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도 문경이 고향으로 대구에서 대학을 나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해 비슷한 연배인 듯싶어 나이를 물으니 신랑은 자기보다 세살위고 자기는 소띠란다. 아니나 다를까 갑장이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난 만큼이나 반갑게 느껴지는 건 여기가 중국이라 그런 걸까? 식사를 마치고 삼청산 전세버스에 오르니 모두들 비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어젯밤 기도가 부족하여 삼청산신께서 노하여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오늘 산행을 허락하되 참모습은 보여 주지 않을 것 같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버스에서 내려 우의를 입고 케이블카에 오르니 안개가 뿌옇게 온 산을 휘감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발아래 안개가 떨어지기 싫어 따라 올라오는 듯하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빗줄기가 굵어져 산행을 방해한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일행은 한줄로 서서 산행에 나선다. 우의를 입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산행속도는 나지 않지만 갈림길이 많아 일행을 놓칠까봐 연신 일행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절벽에 콘크리트 허공다리를 설치하면서도 한그루 나무를 살리기 위해 불편을 감수했을 인부들의 수고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리 커지도 않을뿐더러 이름난 수종도 아닌듯한데 왜 저리 공을 들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이곳이 중국 동식물의 보고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이라 생각하니 이내 이해가 간다. 비가 와서 산행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한 나의 당초 짐작은 완전히 빗나가고 우중에도 오가는 사람들로 등산로는 만원이다. 일렬로 서서 앞사람만 따라 걷다보니 오르막 내리막을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가 없다. 한 시간여 걸었을까 잠시 일행이 멈춰 먼 산을 바라보니 햇살이 비치고 잠시나마 기이한 바위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얼른 배낭에 넣어두었든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기가 무섭게 안개가 다시 산을 덮어버린다. 처녀가 더운 낮 개울물에서 목욕하려고 옷을 벗으려다 들키자 부끄러워 얼른 다시 옷을 고쳐 입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산장에서 먹는 점심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이번에도 우리 일행은 한자리에 앉아 모두들 가져온 밑반찬으로 진수성찬을 갖추니 다른 테이블에 앉은 선생님팀에서 부러워 연방 우리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모두들 허기진 탓인지 맛있게 한 그릇씩을 금새 비우고 나니 우리 조장님께서 교장선생님이신 사모님 눈치를 보면서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내놓는다. 소주였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우리는 건배를 외치며 술잔을 비웠다. 늘상 먹어온 술이건만 오늘 같은 술맛을 다시 느낄 날이 올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만큼 실망도 큰 하루였지만 내일은 꼭 황산을 볼 것이라는 기대로 하산을 하고는 다시 숙소가 있는 황산시내로 향한다. 차창밖에는 어느덧 비가 멈추고 멀리서 햇살이 비친다. 하늘의 괘씸함이 마음속에서 솟구치지만 내일의 희망으로 덮어둠이 군자의 덕이 아닐까 생각하고는 호텔에 닿았다. 어제의 실망으로 아침에 눈을 뜨자 바로 창밖에 시선이 간다. 다행이 비는 오지 않지만 날씨가 좋은 편이 아닌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오늘 황산의 날씨는 대체로 맑지만 한줄기 소나기가 예고되어 있단다.‘황산신령이시여! 부디 오늘만은 우리 일행에게 당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 주소서!’마음속으로 빌면서 황산으로 향한다. 이십여분을 지나자 옥병루에 닿았다. 산 아래 매표소에서 붐비든 사람이 모두 여기 모였는지 수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한 곳에 모여 오늘 산행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먼저 천도봉으로 향한다. 경사가 70도는 족히 될 것 같은 가파른 경사 계단을 오르고 나서 뒤를 돌아다보니 우리가 지나온 옥병루가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지나온 계단길이 마치 기찻길 철로위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처럼 보인다. 현수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어 쉬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선 쉴 장소를 찾으니 앞서 가든 일행이 먼저 와 쉬고 있다. 학생이 대단하다며 한마디씩 건넨다. 이 칭찬에 아들놈 짜증이 줄어들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든다 큰 바위를 정으로 쪼아 돌계단을 만들고 경사가 심해 오르내리기 힘든 곳에는 바위에 구멍을 내어 손잡이를 만든 등산로. 돌로 깎아만든 손잡이가 닳아 반들거리는 걸 보니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음을 알 수 있다. 한참을 더 오르니 천도절정이라는 푯말이 보이고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다. 세 명도 한번에 설수 없는 바위 정상이 너무 좁다보니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한 컷 찍었다. 오를 때는 호흡이 가빴으나 내려오면서는 다리가 후덜거린다. 칼바위 능선에 올라 사진을 찍자하니 현수가 겁이 난다며 먼저 내려가 약간 서운함이 든다.‘사내놈이 그리 겁이 많아 무슨 일을 하겠노’혼자 생각하면서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오를 때 안개사이로 살짝 보였든 저 멀리 옥병루가 안개가 걷히자 한폭의 선명한 동양화처럼 와 닿는다.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황산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를 두고 옛 묵객은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이라 했든가? 옥병루 오르는 길이 복잡하다. 그냥 오르기도 힘든 계단길을 백킬로 이상의 무거운 짐을 어깨위에 메고 오르는 짐꾼 모습에서 인간능력의 한계가 과연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저분들의 수고덕택에 우리 일행은 옥병루에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황산 십송 중 첫째인 영객송을 담기위해 점심을 빨리 먹고 내려가니 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내 백보운제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관광 온 내국인들이 너무 많아 조금은 소란스럽지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절경이라 탄성으로 묻혀 버린다. 정면에 황산 제일봉인 연화봉이 보이는 백보운제에 다다르니 만지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거북바위와 뱀 머리 바위가 비경을 찾은 내외국인들을 맞는다. 보수를 위해 폐쇄된 연화봉 오르는 길을 비껴 오어봉(鰲魚峯)으로 향한다. 오어봉은 커다란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대강의 모양새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정말 물고기처럼 생겼다. 여기를 오르기 위해선 일선천(一線泉)을 지나야 한다. 연화봉과 오어봉의 거대한 돌봉우리가 제 크기를 못 견뎌 쩍 갈라진 틈새 같은 일선천은 가파르고도 좁은 계단길. 이십여분간의 힘겨운 발걸음을 옮긴 끝에 하늘이 열려 고개를 들자 어른 한 아름 크기의 둥근 돌공이 협곡사이에 걸려 있다. 하늘에서 선녀가 던진 공이란다. 이윽고 해심정! 여기서부터 황산 산행의 최고 백미 서해대협곡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물을 사기 위해 매점에 들르니 산 아래서 오백원하는 생수가 이천원이란다. 어쩔 수 없이 두병을 사 한모금 들이키고 뒤처진 일행이 오기를 기다린다. 가져온 초콜렛을 일행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니 모두들 고맙다며 인사한다. 협곡의 초입. 깎아지른 절벽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돌계단 길이다. 계단 폭은 왜 그리 좁은지. 한 번 들면 못 빠져나올 듯한 심연처럼 안은 어둡다. 몸은 절벽 쪽에 바짝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저 밑바닥은 보이지도 않는다. 거대한 바위굴을 지나자 신선이 건넜다는 보선교가 보인다. 두개의 바위봉을 사이에 두고 공중그네처럼 연결됐다. 그 보선교를 통과하자 하늘마저 가리면서 눈앞을 가로막는 절벽, 길이 없다. 아니다. 깎아지른 절벽에 선반을 걸친 듯 좁은 인공길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얼마나 더 내려갔을까. 머릿속이 하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오르막길이다. 또 그렇게 오르고 올라 날은 이미 어둑할 즈음. 머리 위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서해 대협곡의 종착점 배운정이다. 황산에 든 지 여덟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협곡을 휘감아 솟은 구름과 안개가 이 곳에 이르러 저절로 물리쳐진다고 해서 배운정(排雲亭)이란다. 지나온 협곡을 돌이켜보자니 서쪽하늘이 일몰에 붉게 물들고 있다. 당초 계획된 비래석과 광명정까지 산행을 하기엔 시간이 늦어져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서해호텔로 향한다. 천도봉에 오르지 않고 먼저 온 일행이 우리를 반긴다. 오랜 산행으로 갈증이 심해 호텔 매점에 들러 맥주 두병을 사서 일행과 나눠 마시니 그 맛이 일품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쉬고자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산속의 호텔인데도 비교적 깨끗하게 꾸며져 있다. 새벽 네시에 기상하여 청량대로 향한다. 날이 어둑어둑하여 걷기에 조금 힘들지만 준비성 많은 우리 조장님께서 준비해온 손전등을 밝히어 모두 뒤따라 걷는다. 한참 후 눈앞에 뭔가 특이하게 여겨지는 소나무 한가루가 눈에 들어온다. 등소평 후계자로 알려진 강택민이 황산에 올라 이 나무를 보고는 가지가 너무 많아 세워보라 하였더니 공교롭게도 중국내에 거주하는 쉰여섯 소수민족과 숫자가 같아 서로 단결하여 살고자 함을 의미해 붙여진 일명 단결송이란다. 북해호텔에서 좌측으로 계단을 조금 오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일출을 보고자함은 중국인에게도 큰 소망인가보다. 일찍 온 사람들 중엔 담요를 덮어쓴 이들도 보인다. 늦게 와서 좋은 자리를 찾겠다는 우리 일행을 비웃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잠시 후 운해가 붉게 물들면서 불덩이가 솟구친다. 모두들 환호성을 울려대고 카메라 셔트를 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모든 생물의 근원이 저 빛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경외감마저 우러나고 나 자신도 모르게 소원을 빌어본다. 북해빈관 앞에 이르니 커다란 인물 입간판이 두개 보인다. 중국의 개방 개혁의 상징인 등소평과 그의 후계자 강택민의 그림이다. 등소평이 나이 칠십이 되어 도보로 황산에 올라 그 절경에 취해서는 “전 인민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려 12년간의 설계와 9년간의 공사로 서해대협곡 등반 루트가 개발되었다는 설명을 듣고서는 지도자의 올바른 식견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한다. 고개를 돌리니 어제부터 무수히도 기암괴석을 보아 왔으나 유독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눈에 띤다. 몽필생화다. 옛 시인이 황산의 기송 괴석을 글로 표현할 수 없어 붓을 던졌더니 바위가 되었고 그 바위 정상위에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나 이름 붙여진 그 바위다. 모양도 비슷하게 생겼다. 지금의 소나무는 살아있는 게 아니고 70년대에 고사하고 난 후 심은 모조품이란다. 몽필생화를 첩첩으로 둘러싼 주위 봉우리가 장관이라 사진을 찍으려 하니 역광이라 눈에 보이는 만큼 담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지막 하산의 길로 접어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아령 매표소가 보이고 교장선생님 부부와 함께 우리는 케이블카에 오른다. 조금 전 떠오른 태양이 바위산에 빛을 비추니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옛 여인의 목욕 후 참빗으로 곱게 단장한 머리모양새 같다.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다시 셔트를 눌러대고 나니 하산의 종착지 운곡역에 다다른다. 귀국길에 우리 일행은 그간의 여행피로 때문인지 모두들 깊은 잠에 빠졌고 금새 인천공항에 닿았다. 비록 사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귀향본능 탓일까 집에 간다는 희망으로 생기가 보이지만 이내 이제 헤어져야한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모두들 표정은 어둡다. “좋은 분 만나 이번 여행이 너무 유익하고 즐거웠다”고 인사하자 “부자간의 아름다운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고 선생님 부부 말씀에 어깨가 으쓱해짐을 느꼈다. 교장선생님 부부, 곰치부부, 자매같은 누님 두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고 이번 여행을 같이한 모든 분께 감사를 느끼며 대구로 내려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 당초부터 산행으로 계획된 여행이라 집사람과 동행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 머리로 느끼는 것이 여행이라면 더 많이 보고 느끼게 해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여행보다 삶에 더 큰 가르침은 없다”는 글귀가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이번 현수와의 여행이 유익했음을 의미하는 것일 테고 기회가 된다면 몇 년 후 대학생이 되는 딸아이 지은이와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